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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노린 유튜버들 자극적 영상 쏟아내도 제재 수단 없어 [심층기획 - ‘손정민 사건’ 불신 키우는 ‘사이버 레커’들]

입력 : 2021-06-01 06:00:00 수정 : 2021-06-01 09:5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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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노린 ‘사이버 레커’ 등장
사건 초기부터 친구를 피의자로 몰아
여론 편승하며 수십건씩 의혹 제기해

위법 여부 검토 나선 경찰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수사까지 혼선
이례적으로 수사 상황 공개하기도

전문가들 “유튜버 견제 장치 필요”
“검증 없는 의혹 제기땐 사회 혼란 우려
제재와 함께 표현의 자유 보장도 필요”

“그날의 진실을 찾습니다.”

 

지난 29일 오후 6시쯤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맞은편.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수백명이 우산을 쓴 채 모여들었다. 지난달 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손정민씨(22)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반포한강사건 진실을 찾는 사람들’(반진사)이 방역당국의 지침에 따라 참석인원을 9명으로 제한했지만, 폴리스라인 밖에는 200여명이 모여 비를 맞으며 집회를 지켜봤다.

 

이들이 모인 것은 단순히 ‘추모’만 하려는 게 아니었다. 주최 측은 손씨를 기리고 사건 목격자를 찾는 것이 집회의 목적이라고 설명했으나 연설자로 나선 사람들의 입에서는 추모와 거리가 먼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하나였다. ‘손씨 실종 전 함께 술을 마셨던 친구 A씨가 범인인데, 경찰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있다’는 것. 한 참석자는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마치 결론을 정해놓은 듯한 경찰의 수사 방향”이라고 비판했지만, 이들 역시 ‘A씨가 범인’이라는 결론을 정해놓은 모습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틀 전 ”지금까지 이 사건이 범죄와 연관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발표한 경찰을 향해 “편파적인 수사”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 참가자는 ”A씨는 그날의 일들을 마치 가위로 편집이라도 한 양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여러 가지 확인된 사실과 증거들은 동석자(A씨)의 진술을 의심스럽게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의심스러운 정황’의 출처는 대부분 유튜브였다. “우린 경찰은 안 믿는다. 유튜브만 믿는다”고 하거나,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모두 A씨에게 유리하게 수사·부검 결과 등을 조작하고 있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손씨가 숨진 채 발견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론의 관심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경찰이 중간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지만, 경찰 발표를 불신하는 시선이 많아 시간이 지날수록 논란은 더 확산하는 모양새다. 특히 일부 유튜버는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폐쇄회로(CC)TV 화면 등을 조작하면서 ‘가짜뉴스’를 만들고 진위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하게 확산한 허위정보를 단속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론 관심 높아지자 ‘사이버 레커’ 등장

 

손씨의 실종 사실은 그가 사라진 지 나흘째인 4월 28일 아버지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이후 손씨의 지인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손씨를 찾는다는 글을 올리면서 언론에도 소개됐다. 많은 사람이 찾는 한강공원에서 대학생이 실종됐다는 사실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하루빨리 손씨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그달 30일 손씨가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A씨가 손씨 죽음에 연루됐다는 각종 의혹 제기가 쏟아진 것이다. A씨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진술했지만, 온라인에서는 △A씨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채 손씨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귀가했던 점 △A씨가 실종 당일 신었던 신발을 버린 점 △A씨가 부모와 함께 손씨를 찾으러 한강공원을 다시 찾았던 점 등 A씨와 그 부모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행동을 했다며 사실상 A씨를 가해자로 몰아가는 의혹과 비난 글이 줄을 이었다.

이 같은 의혹의 중심에는 유튜브, 특히 ‘사이버 레커’가 있었다. 사이버 레커란 교통사고 현장에 나타나는 견인차처럼 이슈가 생길 때마다 온라인 공간에서 관련 이슈를 자극적인 방식으로 생산하며 조회수를 높이는 유튜버들을 일컫는다. 특히 문제의 유튜버들은 경찰이나 유족 측이 공개한 CCTV 자료 등을 의도적으로 변형하거나 짜깁기하는 방식으로 각종 의혹을 제기하는 영상을 올렸다. 근거가 없거나 실체가 불분명한 의혹도 많았지만, 이들의 목적은 진실 규명이 아닌 ‘조회수’였기에 수많은 가짜뉴스 유통의 진원지가 됐다.

 

일부 유튜버는 사건 초기부터 친구 A씨와 관련한 ‘배후설’을 꾸준히 제기했다. A씨의 가족 중 경찰 고위 관계자가 있어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것이다. 배후설은 단순 ‘뜬소문’에만 그치지 않았다. 전 서초경찰서장 등의 실명과 이력 등이 담긴 ‘구체적’ 소문이 퍼졌고, 급기야 소문의 당사자로 지목된 이들이 언론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해명하기도 했다. 이밖에 A씨의 아버지가 유명 대학병원의 교수라거나, 손씨를 목격했다는 사람들은 경찰이 사건을 종결하기 위해 매수한 사람들이라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손씨의 사망 배경에는 여자 문제가 있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은 얘기까지 무차별적으로 돌았다.

 

이 같은 음모론의 확대 재생산은 사건 진상을 파악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서초경찰서도 지난 18일 “수사 초기부터 인터넷 등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퍼지고 있어 수사에 불필요한 혼선이 발생하고 수사력이 분산되는 등 다소 어려움이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경찰이 이례적으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해당 자료를 전 국민에게 공개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경찰청은 최근 손씨 사망 사건과 관련한 A4용지 23쪽 분량의 중간 수사 상황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는데 전례가 드문 일이다. 경찰은 온라인에서 제기되는 의혹 24개와 관련해 확인하거나 확인 중인 사항을 문답 형식으로 조목조목 설명하기도 했다.

 

경찰은 손씨 사망 의혹을 둘러싸고 허위사실 유포 행위가 위험 수준이라고 판단해 해당 유튜버 등을 상대로 위법 여부 검토에 돌입한 상태다. 특히 김창룡 경찰청장이 ‘이번 사건을 지휘하는 서울경찰청을 대체할 별도 수사대를 구성했으며, (경찰관) 개인이 효과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해고할 준비가 돼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조작 영상을 올린 유튜브 영상에 대해서는 내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지난 29일 서울 서초구 고속터미널역 입구에서 반포한강사건 진실을 찾는 사람들(반진사) 주최로 열린 진실 규명을 위한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경찰의 공정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향력 커진 유튜버 견제 장치 필요”

 

여론의 관심을 끄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자극적인 영상이 유튜브에 쏟아지는 것은 조회수가 곧 수익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조회수를 올리면 광고 단가를 높일 수 있고 실시간 채팅 기능인 ‘슈퍼챗’으로도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슈퍼챗은 특히 부적절한 콘텐츠를 올려 광고주들이 회피하는 ‘노란딱지’ 채널에서 새로운 수익 창출 수단이 됐다. 슈퍼챗을 통해서 시청자들은 채널에 1000∼10만원 단위의 후원을 할 수 있다. 이처럼 가짜뉴스 같은 부적절한 영상을 올려도 제재할 수단이 적어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올해 초 아동성범죄자 조두순이 출소할 때도 일부 유튜버의 행태가 문제가 됐다. 조두순이 출소할 당시 유튜버들이 그의 집 앞을 찾아가 실시간 방송을 하며 논란이 된 것이다. 일부는 조두순을 태운 호송 차량을 파손하거나 그가 사는 건물의 배관을 타고 올라가고, 서로 싸움을 하는 등 소란을 피워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당시 경기 안산 단원경찰서는 조두순 집 앞에서 발생한 소란행위와 관련해 98건에 달하는 민원을 접수했고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A(21)씨 등 8명을 입건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유튜브 등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이를 견제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언론 보도를 견제할 장치는 많지만, 유튜브는 아직 사각지대에 존재한다. 유튜버에게도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해야 한다”며 “검증 없는 의혹 제기가 계속되면 사회에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다만 언론개혁시민연대 김동찬 사무처장은 “유튜브에 대한 제재와 처벌을 확대했을 때의 부작용과 역효과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면서도 잘못된 정보에 대해 개입할 수 있는 여러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이 많아야 하고, 디지털 환경에서 수용자들의 디지털 리터러시(문해) 교육 역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獨, SNS사업자가 불법 내용물 삭제 책임져야

 

손정민씨가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후 유튜브 등을 통한 ‘가짜뉴스’가 또다시 사회문제로 대두하면서 허위정보를 규제하는 해외 입법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31일 국회입법조사처의 ‘허위정보 해외법제 현황’ 보고서를 보면 다수의 국가들이 가짜뉴스라 불리는 허위조작정보에 대응하기 위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가장 먼저 규제를 한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업자가 불법 내용물을 즉시 삭제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사업자에게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법안이 2017년 연방의회를 통과했다.

 

해당 법은 가짜뉴스뿐 아니라 민주주의 훼손, 범죄 모의, 혐오 선동, 명예훼손 등 독일 형법이 정하는 ‘불법 내용물’을 규제 대상으로 한다. 이에 따라 유튜브나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 사업자는 불법 내용물 신고가 접수될 경우 24시간 이내에 이를 삭제하거나 접속을 차단해야 한다. 이런 의무 규정을 이행하지 않으면 해당 기업은 최대 5000만유로(약 659억원)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2017년 대선에서 가짜뉴스로 홍역을 치른 프랑스에서는 2018년 허위정보 확산을 제한하기 위한 ‘정보조작투쟁법’이 발효됐다. 선거에 나선 후보자가 선거 전 3개월 동안 SNS상 허위정보 삭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을 골자로 한 제도다. SNS 사업자는 이용자들이 알 수 있도록 허위정보를 표시해야 하며, 게시물 작성에 투입된 자금 출처를 공개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이를 위반한 사업자는 징역 1년과 벌금 7만5000유로(약 1억원)에 처해진다.

 

싱가포르에서도 2019년부터 가짜뉴스에 대응하는 법률이 시행 중이다. ‘허위조작정보법’이라 불리는 이 법은 정부가 플랫폼사업자와 이용자를 대상으로 허위정보의 정정이나 삭제를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악의적이고 국익이나 공공이익을 해친다고 판단됨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최대 100만싱가포르달러(약 8억4200만원)의 벌금을 매길 수 있다.

 

이종민·이정한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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